12. 1. 4.

뭐 그저그런 일상 중 하나


해외 공연 아티스트를 섭외하게 되면 앞의 길고 긴 협의와 확인의 시간은 이사님이나 내가 처리를 하고 정작 공연 당일은 걔네 옆에 붙어 있을 시간은 거의 없으므로(때로는 인사할 시간도 없다) 대부분의 의전은 다른 스탭이 담당한다.  그런데 유명 외국 아티스트 의전을 맡겨 놓으면 성실하게 잘하는 스탭도 있지만 그 중  몇몇은 본인은 아티스트에게 너무 황송한 마음을 갖고 하인이 주인 모시듯 모시고 다니거나 혹은 아티스트 옆에 있는 본인이 대단한 출세라도 한듯 행동하곤 한다. 후...니네 고작 길어야 이틀전에 만났잖아.  그 중에는 심지어 나에게 대드는 스탭도 있다. 아티스트가 원하는 데 왜 안들어주냐며. 넌 그럼 아티스트가 너보고 옷벗고 물구나무 서라고 하면 그렇게 할거냐. 상황 좀 보라고 전체 상황을. 이라는 말 외엔 할 말이 없다.


비용에 있어서도 계약서 상으로 이미 협의를 마친 부분에만 정산이 나가는 게 당연한대도 아침 점심 저녁 다 먹이고 간식 티타임 보양식 회식 다 가지고 본인 간이며 쓸개까지 갖다 바친 다음 비용은 회사로 청구할때도 있다. 후...그래놓고 '너 미쳤구나' 외에 내가 무슨 덕담을 해주길 바라는지... 하지만 그 말을 하고 나면 애들은 화장실에 들어가 울기 시작하고 난 천하에 성격 나쁜 미친X이 되어 있기 일쑤.


우리는 프로모터와 아티스트간의 동등한 입장으로 만난거지 주종관계가 아니라고 그토록 사전에 말해 놓지만 그들앞에 서면 마냥 주인의 사랑을 받고 싶은 강아지처럼 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임마 너 지금 팬 아니라니까. 아 그럼 그냥 티켓을 사든가.


아티스트는 공연하러 온거지 너랑 베프되거나 애인 삼을라고 온게 아니라고  보다못해 말해줄 때도 있다. 사인받거나 사진 찍는 정도라면 이런 소리 할 필요도 없다. 도대체 의전은 아티스트가 공연하기에 문제가 없도록 옆에서 서포트 하는 역할을 맡은 거지 걔네랑 룸싸롱 같이 가주는 역할이 아니라니까! 


뭐 아티스트가 펜팔친구라도 되줄 거라 생각하는건가. 아님 다음 앨범에서 본인을  생각하며 곡이라도 써주리라 기대하는 걸까. 사석에서 만나서 호텔방에 쳐들어가든 의형제를 맺든 알아서 할일이고 제발 일로 만나서는 착각하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작은 나의 바램을 무참히 짓밟아버린 우리의 꼬마들이여.


아무튼 의전이라는 것은 굉장히 미묘한 자리이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상황에서의 문제인지라 실은 나 조차도 썩 잘하지 못하는 분야이다. 문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다거나 옆눈으로 본다거나 뭐 그런 안절부절의 연속.

돌이켜 생각해보면 예술의 순수함은 상업의 독기에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게 의전에서 실수를 저지른 스탭들의 공통 관념이었던 것 같다.  미안하지만 아티스트와 우리는  순수한 사촌지간같은 게 아니라  계약 관계로 얽혀 있고, 그들이 떠나고 나면 다음 계약까지는 실상 그냥 '남'일 뿐, 어떤 관계도 아니다. 해줄 건 해주고 받을 건 받는 게 계약 관계의 기본. 잘 해주고 친분을 쌓아서 친구가 되는 것도 멋진 일이겠지만 그것만 하려고 여기 들어왔다면 다시 내보내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왜 유명인에 열광하는 것일까.
주변 사람들에 먼저 열광해주면 안되는 것일까.
아티스트와 친구가 된다는 건 멋진 일이지.
하지만 주변 사람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인생에 도움되는 일이다.
스탭들과 나는 적어도 한달 이상을 같은 사무실에서 밥 먹고 이야기하고 지내왔고
아티스트는 고작 하루에서 길어야 삼일 보는 것이라면 말이다.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과연 누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상식적인 판단말이다. 주목받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 또한 아티스트이고 이들에게 먼저 감사하고 이들의 권리를 위해 무언가를 먼저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다음 공연에서는 제발 정말로 유명 아티스트를 직접 만나자마자 공항에서부터 흥분하여 미쳐 버린 의전 스탭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동등한 인격체로 마주봅시다.